한창기 때문이다. 

돌아보니 어느덧 24번째 꼭지를 쓰고 있다. 매달 하나씩, 그러니까 벌써 The Creator를 연재하기 시작한지 2년이다. 오늘 소개하고 싶은 사람은 내가 이 연재를 시작하도록 결심하게 만든 인물이다. 사실 나는 그를 이 연재를 끝내는 마지막 달에 소개하려고 했었지만, 이번 SHOUT는 300호 특집인 관계로 보따리를 미리 풀어보려고 한다. 바로 ‘한창기’라는 사람이다. 이 위대한 디자이너는 디자인학과가 아닌 서울 법대를 졸업했으며, 전 세계에서 브리테니커 백과사전을 제일 많이 팔던 세일즈맨이었다. 한글이 아닌 영문판 백과사전을 팔아야 했기에, 한창기는 ‘한국에서 영어를 제일 잘 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렇게 영어로 책을 팔던 한창기는 1976년 느닷없이 <뿌리깊은 나무>라는 잡지를 창간한다.
 

 
 

<뿌리깊은 나무> 우리나라 최초의 ‘디자인 된’ 잡지 

<뿌리깊은 나무>는 정말로 느닷없었다. 우리나라 최초로 한글전용과 가로쓰기를 시도하였고 아트디렉터와 그래픽 디자이너 그리고 사진기자들로 구성된 미술팀을 운영했다. (믿을 수 없겠지만, 그 이전까지는 책과 잡지를 디자이너가 디자인하지 않았었다.) 덕분에 한국의 것이 분명함에도 이제껏 한국인이 볼 수 없었던 글과 디자인으로 똘똘 뭉쳐있는 잡지였다. 산업은행의 로고를 만든 아트디렉터 이상철이 이끈 미술팀은 한글 글꼴의 재해석과 그리드 시스템을 적용하여 잡지를 편집하고 디자인하였다. “뿌리깊은 나무는…… 되도록 우리말과 그 짜임새에 맞추어서, 지식 전달의 수단이 지식 전달 자체를 가로막는 일이 없도록 힘쓰려고 합니다.” 더불어 창간사에 한창기가 썼던 대로, <뿌리깊은 나무>의 모든 기사들은 오랜 시간 동안 식민지화 되어있었던 우리의 언어를 찾아서 문장으로 연결하는 짜임새 있는 국어의 리디자인 작업이었다. 이런 원칙으로 한창기는 <뿌리깊은 나무><샘이깊은물> 그리고 <숨어사는 외톨박이><한국의 발견>등의 잡지와 책을 통해 한글의 꼴과 쓰임을 다시 디자인 했으며 판소리 음반, 칠첩반상기 제작, 민중자서전 출판으로 이어지는 프로젝트를 통해 한국의 토박이 문화들을 발견한 후, 자신만의 방법으로 다시 디자인하여 대중에게 소개했다. 한창기는 이제 한국에서 한국말을 제일 잘 하는 사람이 되었다. 한창기는 또한 새로운 광고 스타일도 만들어 냈다. 많은 이들이 우리나라의 광고를 한창기 이전과 이후로 나눌 만큼 한창기의 광고는 내용과 시각적으로 모두 이전의 광고와는 크게 차별화 되었다. 3년 전 월간 디자인에서 발표한 한국의 디자인 프로젝트 중 1위는 바로 ‘<뿌리깊은 나무>의 창간’이었다. ‘<뿌리깊은 나무>는 한국 그래픽 디자인 역사에서 전설이 되었으며, 이상철 스타일은 여전히 우리나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편집스타일’ 이라고 월간 디자인의 김신 편집장은 말했다.

 
 

디자인. 아주 잘하든가, 아예 하지 말든가.

한창기는 손으로 artwork을 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생각과 말과 눈과 글로써 한글의 꼴과 의미를 그리고 한국의 공예, 소리, 맛, 문화재등 토박이 문화를 새롭게 디자인해냈다. 그래서 한창기는 디자이너다. 무려 ‘한국의 디자인’을 정립한, 한국에서 가장 위대한 ‘디자이너’라고 불려지기에 부족함이 없는 인물이다. 이상철은 자신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던 한창기를 ‘군더더기를 증오했던 디자인 감시자’라고 정의했다. 디자인이라는 것은 과거라는 프레임과의 단절이며, 새로운 질서에 대한 제시이다. 그 방법을 군더더기 없이 직관적이고 때로는 풍성하게 만들어내는 것이 디자이너들의 작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그래픽 디자이너들이 디자인을 자신들만 하는 일이라고 착각한다. 그 일이 디자인의 일부이긴 하지만 디자인 전체는 아니다. 더 엄밀히 말하면 디자인 전체에서 아트웤을 하는 것뿐이다. 한창기에게 디자인이 무엇이냐고 누군가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상식에 끊임없이 도전하는 일이다. 그러니 아주 잘하든가, 아예 하지 말든가.” 아직도 나를 포함한 많은 디자이너들이 한창기 흉내를 내며 산다. (서울을 디자인하고 있는 박원순 시장 역시 한창기의 고문변호사 출신이다.) 미국에 데이비드 오길비, 빌 번벅이 있고, 유럽에 하르트무트 에슬링거가 있었다면 우리에게는 한창기가 있었다. 그는. 정말. 위대한 디자이너였다.